이태원 사람들을 만나다, 퇴근길 기자 | 이해린


21. 
9월 4일/ 이정범/ 생생건강원 운영/ 이태원 1동 


Q. 당신은 언제, 어디서 왔나요?
이란 다녀오고 나서니까 1981년쯤 됐을 거예요. 그때는 지금보다 일자리가 더 없었던 시절이라, 이란에 돈 벌려고 갔었죠.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다쳐서 돌아왔어요.

Q. 왜 이태원이었나요?
그때는 이태원에 술집도 많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어요. 하루하루 버는 인생. 그렇다 보니까 현금이 빨리빨리 돌았죠.

Q. 어떻게 하다가 건강원을 하게 되었나요?
이태원에 처음 왔을 때는 아무 기술도,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어요. 맨몸으로 와서 할 게 없었죠. 그래서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했어요. 아까 말했듯 동네가 그렇다 보니까 담배니 술 같은 게 잘 팔리겠다 싶어서. 그러다 돈을 좀 모아서 섬유회사를 차렸어요. 근데 IMF에 다시 쫄딱 망했어요. 그때 아는 사람이 점잖고 공부도 좀 했으니까 건강원을 한 번 해보라고 했어요. 그게 12년 전.

Q. 요즘에는 어떤 게 잘 팔리나요? 외국 사람들도 보약을 먹나요?
장사가 안 돼요.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으니까 사람들이 약을 안 먹죠. 건강관리를 하고 싶어도 당장 생계가 어려운데 누가 보약 달여 먹겠어요. 그리고 외국 사람들도 한약이 좋다는 것은 다 알고 있어요. 단골은 일본 사람이 많아요. 관광 왔다가 한 번 먹고서는 꾸준히 먹더라고요. 지난번에는 아프리카 사람들도 왔어요. 십전대보탕이나 남자한테 좋은 보약들을 먹죠.

Q. 십전대보탕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인삼·백출(白朮)·백복령(白茯岺)·감초·숙지황(熟地黃)·백작약·천궁(川芎)·당귀(當歸)·황기(黃)·육계(肉桂),열 가지 몸에 좋은 재료가 들어간 보약이죠. 몸이 허약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되고 식욕이 없을 경우, 만성 염증이 시달릴 때,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손발이 찰 때 먹으면 좋아요. 체력을 보충해주는 거니까

.Q.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여기 문닫으면 그냥 집에서 쉬어야죠. 그리고 이제 어디 갈 생각 안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태원이 내 팔자인 것 같아요. 1956년도에 군대생활 할 때, 여기가 공동묘지였거든요. 그때 여기서 꿩 잡고 놀았었는데,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 벗어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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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건강원의 이정범은 이태원을 이렇게 표현한다. “집으로 가면 대사관 높은 분들이 사시고, 가게로 내려오면 술집이 있고, 이태원은 극과 극을 볼 수 있는 동네예요. 여기는 막 나가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러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해요.” 재개발 덕분에 큰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집도 사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태원은 그에게 달갑지만은 않다. 12년 전에 직접 페인트 칠해서 만든 간판을 아직도 쓰고 있고, 가게 앞에서 토란을 키운다. 토란대는 말려서 육개장을 끓여 먹고, 무치거나 볶아 먹기도 한다.